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의 뜨거운 태양 아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우물가에 나타났습니다. 다섯 번의 이혼과 지금의 비정상적인 관계, 그 수치와 정죄의 화살을 피하려던 그녀의 인생은 철저히 '자기 보호'와 '자기 연민'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녀가 구한 것은 고작 "다시는 물 길러 오지 않게 해달라"는 육체적 편안함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녀의 감추고 싶은 환부를 정확히 찌르십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이것은 망신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가두고 있는 자아의 껍질을 깨뜨리려는 영적 수술입니다. 내 문제, 내 아픔, 내 결핍에만 집중하는 인생은 백날 은혜를 받아도 다람쥐 챗 바퀴입니다. 나를 보호하려던 그 얄팍한 수단, 물동이를 던져버릴 때,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터집니다. 여인은 주님을 선지자로 알아보자마자 '예배'를 묻습니다. 놀라운 통찰입니다. 인생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유일한 길이 '예배의 회복'임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안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장소(예루살렘)를 따졌고, 사마리아인들은 전통(그리심 산)을 따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성령(영) 안에서 말씀(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단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감히..."라는 낙심과 절망은 사치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런 자를 찾으십니다. 예배가 살아야 인생이 삽니다. 예배에서 내 죄 씻음을 확신하고 정결함을 입을 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로부터 자유함이 생깁니다.
제자들이 동네에서 먹을 것을 구해왔을 때, 주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지금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씀입니다. 왜입니까? 사마리아라는 버려진 땅에서 한 영혼이 살아나는 '사명의 성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짜 에너지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유가 늘어야 배부르다고 하지만, 성도는 쓰임 받아야 배부릅니다. 솔로몬은 하고 싶은 것 다 해 보고, 가질 것 다 가져본 인생의 끝판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헛되고 헛되도다"였습니다. 자기에게 집중된 삶의 결과는 결국 허무라는 독으로 돌아옵니다. 반면, 복음위해 자기를 던진 인생은 안 먹어도 배부른 충만함을 누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이유는 이것입니다. "다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해 살게 하려 함"입니다. (고후5:15)
'나'라는 좁은 세계관에 갇혀 있으면 평생 우울과 불안의 노예로 삽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왜 내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까"라는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딱 하나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사명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끙끙댈 때는 답이 없지만, 내가 주님의 일(영혼 구원)에 미칠 때 주님이 내 문제를 대신 처리하십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목숨 걸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셔도 다시 목마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여러분의 인생을 던지십시오. 하나님께 사로잡혀 쓰임 받는 그 짜릿한 행복, 안 먹어도 배부른 그 거룩한 포만감을 맛보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