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먼지'에 하나님이라는 '우주'가 담길 때
출애굽의 사명을 앞에 둔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1. "나는 누구입니까?"
이집트 왕자에서 미디안 광야의 목자로 전락해 40년을 보냈습니다. 그런 그에게 수백만 명을 구원하라는 사명이 주어졌을 때, 당혹스럽게 물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리이까?" 이 질문에 하나님은 존재론적인 설명 대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동문서답을 하셨습니다. 왜인가요?
어린아이가 대형마트에서 자기 몸집만 한 무거운 레고 박스를 들고 쩔쩔매며 울먹입니다. "아빠, 난 왜 이것도 못 들어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아빠는 근육량이나 생물학적 조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네가 누군지는 상관없어. 아빠가 지금 네 손을 잡고 있잖아. 같이 가자.” 사명을 앞에 두고 “내가 누구이기에 가리이까”라고 물었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주신 답도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 '누가 나와 함께 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는 먼지처럼 작고 무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비로소 우리 삶에 참된 능력이 나타납니다.
2. "당신은 누구십니까?"
모세의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즉 그 무엇에도 제한받지 않는 절대자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통치권을 우리 마음대로 제한하곤 합니다. 주일 예배나 교회 생활은 주님께 맡기면서도, 재정이나 자녀 교육, 사생활의 영역만큼은 “이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며 주인 행세를 하려 합니다. 만약 수술대에 누웠는데 의사가 “심장 수술은 완벽하게 하겠지만, 나머지 혈관 쪽은 자신이 없으니 환자분이 알아서 하세요”라고 한다면 그 의사에게 생명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부분적인 소유권'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전부를 드리든지, 아니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든지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Nothing)을 뼈저리게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의 전부(Everything)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끝까지 붙들고 있는 '내 영역'은 무엇입니까?
돈, 커리어, 자녀, 혹은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소유권을 만유의 주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철저히 비워지고 주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 그곳에 비로소 참된 행복과 자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