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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진노

사랑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진노

(우리가 직면해야 할 복음의 역설)

로마서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선포하는 성경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의 영광을 노래하기 전, 우리 앞에 아주 불편하고 무거운 단어를 먼저 꺼내 듭니다. 바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을 말하며 진노를 앞세워야 했을까요?

1. 진단이 정확해야 치료가 시작됩니다.

치명적인 암에 걸린 환자에게 가장 '나쁜 소식'은 암 진단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소식을 정직하게 마주할 때 비로소 살길인 수술과 치료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선포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태임을 자각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법은 무서워하면서도 하나님은 무서워하지 않는 시대를 삽니다. 간통죄 폐지에 환호하며 정작 배우자의 피눈물은 외면하는 마비된 양심이 이를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처한 영적 실상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2.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한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처럼 이성을 잃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오염된 분노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악에 머물러 파멸하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실 수 없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소멸하시는 불'로 비유하는 이유는, 그 사랑의 불로 우리 안의 오염과 악을 태워 우리를 다시 거룩하고 순결하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3. 가장 무서운 심판은 '내버려 두심'입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가장 두려운 표현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즉각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용납이 아니라, 어쩌면 하나님의 간섭이 중단된 '포기'라는 무서운 심판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은혜는 돈이나 건강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존재인지를 자각하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마음이 곧 은혜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세상의 가난보다 영혼을 멸하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타인을 긍휼히 여기십시오.

나의 수치스러움을 아는 자는 결코 타인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가 되십시오. 죄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내 초라함을 고백하십시오.

진노라는 어두운 배경이 짙게 깔릴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진노를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더욱 찬란하게 빛납니다. 오직 그분의 의만을 생명줄처럼 붙드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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