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아, 너는 어떠하냐?
환한 대낮, 강렬한 햇살 아래 비친 거울 속 내 모습은 생각보다 초라하고 정직하여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지난 로마서 1장을 통해 하나님을 마음에서 내쫓아버린 인간의 불경건이 얼마나 악한 죄악을 양산하는지 직시해 왔습니다. 성적인 타락과 동성애, 온갖 탐욕과 시기 등 열거된 죄의 목록 앞에서 우리가 마주한 가장 무서운 심판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Abandonment)’이었습니다. 뜨거운 가스레인지 불꽃을 향해 손을 뻗는 아이의 손등을 때려서라도 막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지, 아이가 데든 말든 고개를 돌려버리는 방치는 이미 부모의 마음에서 자식이 지워진 심판과 다름없습니다. 죄 가운데 살면서도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진노 가운데 내버려 두셨다는 가장 소름 끼치는 증거일 수 있다는 경고는 우리의 안일한 영혼을 깨웁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를 완전한 절망의 상태로 몰아넣으며 화살의 방향을 바꿉니다. 로마서 1장에서 ‘그들이’라는 3인칭 복수로 타락한 세상을 정죄하던 시선은 2장에 들어서자마자 ‘너’라는 2인칭 단수로 급격히 좁혀지며 우리 가슴을 정면으로 겨눕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아!”
이 준엄한 꾸짖음은 교회 밖 사람들이 아니라, 모태신앙이라 자부하며 직분을 내세우면서도 그 내면에 복음의 생명력이 메마른 채 타인을 정죄하기에 바쁜 우리를 향한 단호한 외침입니다.
우리는 남의 허물을 지적할 때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누군가를 뒷담화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기를 즐기지만, 바울은 네가 비판하는 그 일을 네가 똑같이 행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처럼 내 안의 더러운 죄를 직면하기 두려워 타인의 작은 티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비난함으로써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는 가짜 평안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자기 눈 속의 거대한 들보(Beam)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 티를 빼려 하는 위선을 꼬집으셨습니다. 눈에 들보가 박히면 사물을 왜곡되게 보게 되며, 이는 인간의 자력으로 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한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탄식하며 자기 파멸을 선언했을 때 비로소 들보가 빠졌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철저한 자기 성찰이 절실합니다. 남을 향해 겨누었던 날카로운 판단의 손가락을 접고 내 가슴을 치며 나 자신의 죄를 먼저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지금이 바로 회개의 골든 타임입니다.
우리가 절망의 끝에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외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분의 품으로 안아주실 것이며, 비로소 우리는 껍데기뿐인 종교인을 넘어 가난한 심령으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