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경이로운 단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로마서 3장 21절의 “그러나 이제는(But now)”을 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3장 20절에 걸쳐,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진노 아래 놓인 죄인이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런 출구가 없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선포합니다. 이 절망적인 영적 파산 상태를 뒤집고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세 가지 핵심 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 이력서를 대신 채우신 '하나님의 의'
우리는 종종 자신의 선행과 공로를 자랑거리 삼아 천국 입사를 위한 '영혼의 이력서'를 써 내려가려 하지만, 우리의 의로움은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걸레 조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천국의 기준을,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무결한 이력으로 대신 채우시고 우리의 이름을 적어 주셨습니다.
차별과 계급이 없는 완벽한 구원
이 구원에는 철저하게 차별이 없습니다. 봉사와 헌신의 분량에 따라 천국에서 상급이 다르게 매겨진다는 생각은, 인간 세상의 실적주의를 천국에 끌어들인 지극히 비성경적인 사상입니다. 복음을 위해 순교한 위대한 사도 바울이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가 받을 상은 오직 하나, 완벽하게 동일한 ‘의의 면류관’뿐입니다.
'이유 없는 사랑'과 십자가의 화목제물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값없이' 주어진 은혜입니다. 세상이 아무 이유 없이 예수님을 미워했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도 우리 편에는 구원받을 만한 어떠한 원인이나 자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달려야 할 십자가의 자리에 화목제물로 서시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피뢰침이 되어 주셨습니다. 믿음은 마치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건네받으려 내미는 '손'과 같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진짜 능력은 내가 뻗은 훌륭한 손(믿음)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핸드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조건적으로 수용되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알량한 자존심이나 체면을 내려놓으십시오. 조건과 자격을 따지는 세상의 잣대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나를 살려내시려는 하나님의 폭발적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철저한 절망의 바닥에서 시작된 위대한 구원의 대반전, “그러나 이제는”의 은혜를 굳게 붙잡고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