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정답이 아니라 풀이 과정이다”
로마서 7장 1절부터 13절 말씀을 함께 나누며 "신앙은 정답보다 풀이 과정"이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미 로마서 6장까지 오면서 이신칭의, 곧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의 핵심을 배웠습니다. 문제는 정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답을 삶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는 노련한 마귀가 조카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걱정 마라. 저 사람은 그 진리를 가지고 교리만 만들어 낼 테니까." 진리를 안다는 것과 그 진리대로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뜻입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냉장고에 붙여 놓는다고 몸이 좋아지지 않듯, 성경 지식을 서재에 쌓아 둔다고 신앙이 저절로 자라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결혼 이야기로 풀어 줍니다. 옛 남편은 율법입니다. 완벽을 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끝없는 잔소리로 숨 막히게 하는 남편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이 죽자 우리는 새 남편, 곧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 새 남편은 우리의 실수까지 품어 주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다시 일으켜 세우는 분입니다. 직장 생활을 떠올려 보면 쉽습니다. 사소한 실수에도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상사 밑에서는 표정부터 굳고, 실수를 감추기에 급급해집니다. 그러나 실수해도 "그럴 수 있죠, 다음에 잘하면 됩니다" 하며 믿어 주는 상사를 만나면, 갑자기 실력이 는 것도 아닌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일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사랑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여전히 옛 남편과 살던 습성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위장하고, 겁내며 살던 옛 버릇을 벗지 못한 채 새 남편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합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그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가족과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해답지를 외운다고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직접 풀어 보고, 그 풀이가 해답과 일치할 때 비로소 실력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해답, 곧 말씀을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하신 그 초청 앞에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해답을 붙들고 삶이라는 문제를 한 걸음씩 풀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은혜의 고백을 누군가에게 건네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정답을 아는 신앙에서, 정답을 살아내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