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는 오답노트가 있다 (로마서 7:14~25)
수학을 잘하는 비결은 문제집 열 권이 아니라 오답노트 한 권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어디서 틀리는지 아는 사람만이 그 자리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 14절부터 25절은 사도 바울이 자기 오답노트를 성경 한복판에 펼쳐 놓은 대목입니다. 6장까지 그토록 웅장하게 써 내려가던 사람이 갑자기 "사실 나는 아직도 이렇습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감출 수 있었던 그 고백을 성령께서 남기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절망했을 것입니다.
첫째, 정직하게 채점하는 사람에게만 오답노트가 생깁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14절)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입니다. 원함은 있으나 행함이 없다는 탄식이 두 번 반복되는데, 두 번 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에서 끝납니다. 한 번 틀렸다는 기록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또 틀렸다는 기록입니다. 피아노는 실력이 붙을수록 자기 소리의 틀린 음이 더 크게 들립니다. 손보다 귀가 먼저 자라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분별력이 먼저 자랍니다. 밤에는 깨끗해 보이던 방도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먼지가 훤히 드러납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는 탄식은 후퇴의 증거가 아니라 빛 앞으로 더 가까이 갔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합니다. 바울은 "의지가 약했다"고 하지 않고 "한 법을 깨달았다"(21절)고 말합니다. 중력처럼 언제나 작동하는 법칙이라는 뜻입니다. 벽지의 곰팡이를 백 번 닦아도 벽 안쪽에서 물이 새면 또 올라옵니다. 문제는 습관이 아니라 본성이고, 행위가 아니라 거주입니다. 존 오웬은 "당신이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정직한 탄식이 나와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24절). 바울은 "무엇이"가 아니라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부르짖습니다. 등에 시체가 묶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세 교정법이 아니라 그 끈을 끊어 줄 누군가입니다. 그래서 이 절규 바로 다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25절)가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훈련 과정도 십 년 세월도 없습니다. 답이 방법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존 뉴턴 목사는 여든이 넘어 기억이 다 흐려졌을 때 두 가지만은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큰 죄인이라는 것, 그리스도는 위대한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세 가지를 권합니다. 하루를 마칠 때 오 분만 앉아 "오늘 나는 어디서 틀렸습니까" 하고 정직하게 물으십시오. 틀린 자리에서 결심하지 말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다른 이의 오답노트 앞에서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해 주십시오. 내 오답노트가 두꺼운 걸 아는 사람은 남의 오답을 함부로 밟지 못합니다. 마음이 무겁다면 그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은 신음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탄식이 거기서 멈추면 절망이 되고, 이름을 부르면 은혜가 됩니다. 7장의 신음 바로 다음에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가 붙어 있습니다. 오늘 신음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8장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