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하고 몇 달이 지났는데 월세 고지서가 한 장 날아온 적 있으십니까? 봉투를 열어 보면 이미 정산이 끝난 요금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철렁합니다. 혹시 내가 뭘 빠뜨렸나 싶어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 봅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도 그런 봉투가 옵니다. 이미 예수님이 다 갚아 주신 빚인데, 지난 한 주간의 실수 하나가 옛 주인의 이름으로 청구서를 보냅니다. 너는 여전히 내 사람이라고, 너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말입니다. 주소도 바뀌었고 명의도 진작에 바뀌었는데, 봉투만 옛 이름으로 옵니다. 그 봉투 앞에서 우리 얼굴이 다시 종의 얼굴로 굳어집니다. 지난 주일에 함께 읽은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 8:12). 빚이 있긴 있는데 육신에게 진 빚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갚아야 할 빚과 갚지 않아도 될 빚이 여기서 갈립니다. 옛 주인에게는 이제 한 푼도 갚을 것이 없습니다.
로마의 입양법이 꼭 그랬습니다. 양자로 들어가는 순간 옛 빚은 소멸되고, 친자와 똑같은 상속권이 주어지고, 그 입양은 무를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 법을 잘 알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롬 8:15). 그리고 우리 입에 한 단어를 쥐여 줍니다. 아빠, 아버지.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부르셨던 그 호칭 그대로입니다. 종은 성적표를 들고 문 앞에서 눈치를 봅니다. 아들은 성적이 나빠도 그 집 밥상에 앉습니다. 그러면 이번 한 주간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넘어진 날 밤에 기도를 건너뛰지 않는 것입니다. 종은 실수하면 주인을 피하지만, 아들은 실수한 날일수록 아버지 앞으로 갑니다. 그날 밤에 딱 한 마디, 아버지 하고 불러 보십시오. 그 한 마디가 나오는 것 자체가 우리 영과 더불어 증언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입니다. 어른들이 결재를 기다리며 서 있던 대통령 집무실에, 아이 하나가 책상 밑으로 그냥 기어들어 갑니다.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자격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라 관계로 얻은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번 목장 모임에서 아직도 종처럼 살고 있는 자리 하나를 꺼내 놓으십시오. 잘해야만 사랑받는다고 느껴지는 그 자리 말입니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부터 그 자리는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혼자 삼키고 있으면 청구서는 계속 옵니다. 면도는 한 번 했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다시 합니다. 육신의 행실을 죽이는 일도 그렇습니다. 아이가 무거운 문을 밀 때 아빠가 뒤에서 같이 밉니다. 문을 연 것은 아빠인데 아이는 자기가 열었다고 자랑합니다. 우리 신앙이 꼭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간 것 같아도, 실은 뒤에서 밀어 주시는 손이 있습니다. 성적표는 흔들려도 호적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한 주간, 종의 얼굴이 아니라 아들의 얼굴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8.16 주일 오전 설교 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