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들’ 이라는 노숙자사역을 하시는 유정옥 사모님이라는 분이 있다.
삼십여 년 전 남편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길바닥에 나앉게 되고, 설상가상 어려움이 겹치면서 죽기 위해 택시를 타고 청평댐으로 향했다.
말없이 달리던 기사님이 근처에 가더니
“자살하려고 하시는 거죠? 자살은 조금 있다 하고 기도원에 갑시다.”
하더니 근처 기도원에 내려 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여기 한 시간 기다리겠습니다. 목적지에 오지 않았으니 요금은 받지 않아요. 한 시간 후에 여기서 만납시다.”
그리하여 기도원 집회에 참여했는데, 어떤 설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울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맨발의 사람이 보여 고개를 들어 보니 예수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신 채로 걸어가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통곡이 터져 나왔다.
당신도 이렇게 맞으시는데,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내려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주시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여 주신다.
고난 받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살아있는 믿음을 발견하게 하신다.
막15장32절에 보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향해 이렇게 외치는 자들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적을 보여주면 믿음이 생길 것이라는 말이었다.
기도해서 병든 자가 벌떡벌떡 일어나면 당장 믿을 것 같은가?
기도했더니 망했던 사업이 당장 일어선다면 믿음이 확고해질까?
기적을 보면 다 믿게 되는 것일까?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적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
망망대해 홍해가 갈라져 육지처럼 건너는 기적을 경험하고, 광야 한 가운데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기적을 경험했다.
메마른 광야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기적을 목격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었나? 단연코 아니다!
가데스 바네아란 곳에 이르러 가나안으로 열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 중 열 명이 하나님께서 가나안에서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원망했다.
수많은 기적을 목격한 제자들 또한 그 기적이 믿음을 세우지 못했다.
수많은 기적이 믿음을 가져오지 않았다.
마가복음 16장 11절은 다음과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기적이 믿음을 형성하지 않는다.
기적은 체험이라는 흔적을 만들지만, 절대 믿음으로 성숙케 할 수 없다.
반면,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사람 시몬, 잠깐 동안이지만 고난의 십자가를 감당했을 때, 그 고난과 모욕을 통해 믿음의 가문이 되었다.
그의 아들 루포는 로마교회의 주요한 일꾼으로 서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주시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여주신다.
고난 받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살아있는 믿음을 발견하게 하신다.
고통이 거름이 되고, 눈물이 비가 되어 큰 믿음의 나무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 고난 없이 부활의 영광은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이 기독교의 참 신앙이다.
(2017.4.2.주일오전 설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