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사랑하는 성 프란체스코가 제자들을 뽑았다.
시험 문제는 씨를 나누어주고 1달 이후에 꽃을 피운 모습을 통해서 선발하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명의 후보들이 씨를 가지고 정성껏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상은 씨를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씨같이 생긴 철덩이를 준 것이었다.
철덩이 이기에 결코 자라날 수 없었다.
그런데 1달이 지나자 여러 명의 후보들이 아름답게 자란 꽃을 가지고 등장했다.
유독 한 사람만이 빈 화분을 들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누가 합격했는가?
빈 화분을 들고 있는 사람이다. 왜 그럴까?
출제자의 의도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아무 꽃도 피지 못한 모습을 정직하게 가지고 오는 것, 그것이 시험의 의도다.
하나님도 종종 우리를 시험하신다.
그 말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시험을 통해 보기를 원하는 내용이 있다는 말이다.
출제자의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가 노력한 답이 아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자기의 의도대로 답을 풀어나가는 것을 성경은 ‘자기 의’라고 말한다.
시험을 통과하는 비결은 출제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그 의도대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다.
다윗이 왜 라마로 요나단에게로 다시 아히멜렉으로 급기야 블레셋의 가드땅 아기스왕에게로 헤메고 다니는가?
출제자의 의도를 놓쳤다.
다윗이 이 사건 후에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기록한 시가 시편 34편이다.
온갖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며 인간의 수단 방법을 강구하던 다윗에게 출제자의 의도를 깨닫게 하신다.
피할 곳은 힘도 크기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라 오직 하나 바로 나 여호와라는 것이다.
시편34:8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만이 피난처가 되신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준 신앙과 고백이 아니라 다윗이 뼈가 저리도록 실제로 체험한 간증이었다.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 되실 수 있음을 절감하는 신앙고백을 위해 시편 34편을 근거로 2가지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경외감’(야레)을 경험하라.(시편34:7)
우리가 세상 살아가다보면 정말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사울 왕 같은 존재와 문제를 만난다.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믿음의 사람도 계속된 두려움을 반복하게 되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일반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야레’다.
이뜻은 쉽게 표현해서 하나님께 내 인생의 결재권을 드리는 것이 야레다.
두 번 째, ‘선하심’(토브)을 맛보는 것(깨닫는 것)이다.(시편34:8)
선하심이 무엇인가?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다.
창세기1:4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삼상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좋았더라=은총=선하심, 이것이 토브다.
에덴에서 최초의 인간에게 의도하셨던 그 복이 토브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시는 근본적인 은혜요 축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