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서울의 모 교회에서는 <아무개씨가 그 교회 교인 맞습니까?>라고 묻는 확인 문의로 곤혹을 치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아무개씨>가 다름 아닌 최순실씨입니다.
사이비 교주인 최태민의 딸이었지만, 교회에도 제법 나가고 헌금도 드렸다고 합니다.
그녀는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불리길 좋아했다고 합니다.
저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불리길 좋아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단지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어떻게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리얼 크리스챤, 진짜 예수의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누가복음 10장 25절에 보면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를 시험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반문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 “그래 이대로 행하라.”
그랬더니 29절에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이렇게 다시 주님께 반문을 합니다.
“내 이웃이 누굽니까?”
그래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보면 네 이웃이 누구냐?
네 이웃은 옆집에 사는 사람, 우리 아파트 바로 앞 동에 사는 사람만이 내 이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내 이웃이지만, 내 가족, 내가 늘 어울리는 친지 친구들만이 내 이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 인생길, 여리고 길처럼 그 길에서 나를 통해 발견하게 하시는 피 흘려 쓰러져 누워 있는 사람, 나의 사랑을 요구하고 내 관심을 요구하고 또 내 주목을 요구하고 내 앞에 누워있는 사람, 상처받은 그 사람, 그가 누구이든 내 이웃이요 내가 다가서야 할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혼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최순실처럼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아픈 이웃이 이제는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전에는 나만을 위해 삽니다.
내 인생의 목표가 우선입니다.
나의 성공이 우선이고 가야할 길이 먼저였습니다.
리얼 크리스챤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삶으로 사랑합니다.
요일4:20 성경의 아주 중요한 사랑장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요,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God is love.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거한다면 이제 마지막 결정적 사랑의 테스트는 이것입니다.
때로는 거북하고 좀 까다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나의 희생과 손해를 요구하는 그 사람들...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테스트입니다.
<2017.5.14. 주일설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