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시인은 서울대 상대를 입학한 수재였고요 스무살 약관의 나이에 등단한 문단의 천재였다.
북한과 내통했다는 동백림사건으로 인해 모진 고문으로 평생을 고문후유증으로 사셨다고 한다.
그의 시, 귀천을 통해 이 세상 삶을 소풍에 비유했다.
죽음을 ‘소풍 끝내는 날’ 이라는 자조적 시각으로 그리고 있는 그의 감성이 놀랍다.
사무엘상의 마지막 31장은 죽음의 장이다.
사울의 죽음, 요나단의 죽음, 이스라엘의 패망이 그것이다.
왜 중요한 대단원을 그리 달갑지 않은 주제로 마무리하는걸까?
크리스챤은 항상 죽음을 기억하고 직시하며 살라는 의미다.
미국의 어느 공동묘지에 가면 조세프라는 사람의 묘비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I expected this, but not so soon.”
(이렇게 죽을 줄은 알았지만 이처럼 빨리 죽을 줄은 몰랐다)
참 신앙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마음속에 새겨야 하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반드시 적용되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태어날 때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은 죽음에서 예외일 것이라고 착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바로 내 옆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창세기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뜻이다.
자식의 이름을 이렇게 짓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이것은 일종의 신앙고백이다.
인간 자신은 유한성과 죽음을 인지할 때 절대자를 찾게 되어 진다.
그것이 신앙이다.
에노스의 신앙을 갖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겸손과 절실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에노스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감격적인가?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자랑이다. 소망이다.
언젠가 우리도 이 땅의 소풍을 끝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은 죽음이라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삶으로 영원한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