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핵심은 현상이 아니고 대상입니다.
이방종교와 샤머니즘 종교의 특징은 섬김의 대상, 절대자를 얼르고 달래고 어떤 종교적인 행위들을 해서 그 신을 감동시켜서 복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행위, 현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현상보다 행위보다 그 대상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기 우선입니다.
‘어떤 종교적인 표현을 하는가,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가, 그래서 그 결과로 나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가?’이것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그 신을 위해서 무슨 과업을 이뤄냈는가가 핵심이 아니라, ‘그 과업을 왜 했어, 도대체 누구 때문에 한 거야?’ 대상과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교회에서 똑같은 과업을 하고도 하나님의 평가는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넌 믿음의 대상인 나 때문에 교회당 청소 봉사한 것 아니잖아, 티 낼라고 했잖아. 헌금, 니가 제일 많이 했더라, 꽝이야, 너 자랑할려고 했잖아. 나를 고려해서 네 지갑에서 쏟아져 나온거 아니잖아. 직분 체면 상 한 거 아니야?’하나님이라는 대상에 대한 관계와 사랑의 동기가 아닌 것은 세상 봉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율법적 과업 성취에 얼마나 성실했습니까? 도덕성은 얼마나 우수했습니까? 예수님도 인정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인데 왜 사사건건 그들을 책망하셨을까요? 심지어 욕까지 서슴없이 하십니다. ‘저주받을 자, 독사의 새끼들아, 화입을 놈아’ 왜요?
요 5 :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대상에 대한 고려가 없었습니다. 사랑의 동기가 아니었습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새 계명을 줄게’ 귀가 쫑긋합니다. 무슨~ 헌 계명이지요. 이미 신명기에 레위기에 다 기록되어 있던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해라.’
왜 이것이 중요한 새 계명인가요? 요 13:34 어디에 줄을 쳐야 하나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이것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새로 정의하신 사랑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제자들의 발 닦으심과 그 제자들의 배신, 그 이후 십자가 지심의 사건이 이어집니다.
‘배신자들의 발 닦기... 배신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기’
이 두 사건 사이에 오늘 이 새 계명 말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이렇게 사랑해야 되는 거야.”
너희가 이렇게 사랑하면 십자가 목걸이 안 해도, 교패 안 붙여도 내 제자인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할까요? 요한복음3:16 구원론입니다. 요일3:16은 교회론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님이 배신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몸을 내던진 것처럼 우리 공동체 형제 자매를 목숨 바쳐 사랑하는 것이 그분의 최고의 명령입니다.
그럴 준비가 되셨습니까?
내 신앙은 현상입니까? 사랑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