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남긴 9개의 교향곡 가운데, 8번 교향곡을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1악장과 2악장만 완전하게 작곡 되었고, 3악장은 아홉 마디만 오케스트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완성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곡의 선율이 매혹적이고 내용상으로는 이미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으로 바벨론 포로의 삶에서 다시금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 앞에 펼쳐진 고국의 현실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성전은 폐허가 되고, 고향땅은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치안과 경제가 무너졌습니다.
이미 바벨론으로부터 구원의 은총을 주셨건만, 왜 여전히 우리의 삶은 곤고함과 고통으로 가득합니까?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함에도 여전히 우리 삶에 고난이 멈추지 않습니까?
여기서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신앙의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미완성 교향곡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미완성을 완성하기 위해 일어서야 합니다.
시편 85편에서 고라 자손들은 그런 현실적인 고통 앞에서 이렇게 다짐합니다.
시편85편 8-9절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남극에 사는 황금펭귄은 추위가 시작되면 더더욱 가장 추운 극지방으로 몰려든다고 합니다.
무려 영하 40도입니다.
다른 생명체들은 추워지면 모두 떠납니다.
그러나 황금펭귄은 오히려 그곳으로 몰려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곳은 너무 추워 다른 생명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명체가 없기에 마음 놓고 새끼를 부화하여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가장 추운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 되는 역설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따뜻하고 안락한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하 40도의 고난을 찾아가는 것이며, 거기서 진정한 평화를 찾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영하 40도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미완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서 영하 40도 속의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과거를 답습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죄의 답습, 게으름의 답습, 무기력의 답습... 하나님은 온전한 회개와 변화된 순종으로 동행하길 원하십니다.
고난 앞에 무너지는 것, 포기하는 것 어리석은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고라 자손들이 <아직 아님>의 상태를 벗어나 <완성으로 나아가려는 기도>가 우리의 것이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과거에 묶여 현재의 탄식의 동아줄에 얽혀있는 나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말씀과 기도뿐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거룩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