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 히브리어 카도쉬의 어원적 의미는 죄악된 것과 조금도 섞이지 않는‘구별됨’, 어둡고 왜곡되어 비뚤어진 것이 없는 온전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부담스러운 요청을 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11:45)
하나님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이 아닌가요? 우리가 어떻게 거룩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부담과 고민은 거룩함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먼저, 거룩함은 우리의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본질이 하나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이 본질을 바꿔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은 오히려 심각한 죄입니다.
그리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예수님 중 누가 더 거룩한가요?
편견을 내려놓고 인간적인 시각은 바리새인이 더 우월했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을 코스프레(일본식 분장놀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코스프레하는데 신경을 쓰면서 외형적인 거룩함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거룩함은 하나님을 흉내 내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의도하셨던 대로 사람다운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우리 인간에게 요구되는 거룩함의 질량적 차이입니다.
사람들은 ‘거룩하다’라는 말만 들어도 불편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룩함’을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되는 거룩함은 일상과 거리가 먼 이상한 특질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6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거룩함을 명하는 구절에서 다루는 주제가 무엇인가요?
성(sex)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性)은 거룩합니다.
위의 성구는 이렇게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 아닌 자기 아내를 사랑해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이방인처럼 색욕에 빠져 나쁜 짓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성의 분수를 넘어서 동성의 다른 남자에게 해를 가하는 이상한 성행위를 하지 마십시오>
성은 거룩함입니다. 잠자리를 멀리하는 것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결혼관계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침실에서 사랑하는 것이 거룩한 일입니다.
거룩함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입니다.
무엇이 거룩하지 않은가요? 정상이 아닌 것이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나 ‘색욕’이라고 번역된 ‘파토스 에피쒸미아스’란 ‘과도하게 경계를 넘어서는 탐욕’의 추구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거룩이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함은 쉽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이 창세때 의도하셨던 모습으로 진실하게 정상으로 유쾌하게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