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5일 오전 11시 15분, 에베레스트산 6100m(캠프 1) 지점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진도 7.8의 강진이었다. 당시, 시각장애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한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 도서관장은 베이스캠프를 떠나 캠프1로 향하고 있었다. 땅이 성난 파도처럼 출렁이기 시작했고, 초속 20m 가까운 눈 폭풍이 그의 몸을 강타해 그대로 쓰러졌다. 그는 빛을 전혀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오직 진동과 소리만으로 사태를 파악해야만 했다. 눈밭에 엎드린 채 시간을 쟀는데, 지진과 강풍은 정확히 42초 뒤 잦아들었다.
이후 송경태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악전고투 끝에 산에서 내려왔다. 당시 그 지진으로 네팔에서는 8천여명이 죽고 1만7천여명이 다쳤다.
송경태는 20대 초, 군대에서 탄약고를 정리하다 수류탄 폭발사고로 실명을 했다. 그가 시력을 잃었을 때 이웃 할머니가 그에게 ‘평생 집에 갇혀 남이 해주는 밥만 먹어야 할 팔자’라고 했다. 그래서 실명 초기에는 자기 운명을 비관하고 절망해, 집근처 저수지에 투신하는 등, 자살을 6번이나 기도했었다.
그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였다. “자살이란 말을 계속 반복해서 외워보라” 그래서 자살자살자살이라고 이어서 말을 했는데 어느새 그의 입에서 살자라고 중얼거리게 되었고 삶에 대한 용기가 생기게 되었다.
그는 이웃집 할머니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비록 눈은 보지 못하지만 듣고 만지는 다른 감각은 멀쩡하니까 모험심을 갖고 도전하는 인생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가 발 딛는 곳마다 장애인 세계 최초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30대 후반이었던 1999년, 한·일 월드컵 성공 개최 기원 미국 국토 횡단(4000㎞)에 도전한 것이 모험의 시작이었다. 그는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코스인 이집트 사하라 사막(2005년)을 달렸고, 중국 고비 사막(2007년)을 건넜으며, 칠레 아타카마 사막(2008년)을 지나, 남극 대륙(2008년)까지 횡단했다. 모두 합쳐 1000㎞ 코스를 완주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50도가 넘는 사막의 열기, 회리바람의 공포,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의 길 등, 극한의 환경을 뚫고 4대 마라톤을 완주하였다. 세계에서 52번째, 장애인으로는 그가 최초였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2012년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전진기지(4130m)를 등정하고, 미국 그랜드캐니언 마라톤(271㎞)을 완주했는데, 전 세계 참가자 중 장애인은 그가 유일했다.
2014년에는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우후루피크(5895m), 히말라야 임자체(6189m)를 정복했다.
그는 모험만 하는 게 아니다. 부지런히 공부도 하여 2000년 석사학위를 받고, 2011년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년에 100권의 책을 잃고 1권의 책을 쓰는데, 여행전문가이기도 하다. KBS 여행관련라디오에서 3년 동안 여행 소개를 했고, 여행 가이드북까지 썼다.
시각장애인의 몸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느냐고 기자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까 겁날 것이 없네요.”
그는 시각장애는 하나님이 내게 준 축복의 선물이라고 말하며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우리에게도 인생을 살아갈 때 고난과 시련이 있다. 그것을 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디딤돌로 생각하는 사람은 더 크고 놀라운 무한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장애나 부족함이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태도가 문제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환경을 뛰어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