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3일, 중동을 순방 중이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舊)시가지에 있는 ‘통곡의 벽(Wailing Wall)’을 방문해, 유대교 관습에 따라 전통 모자인 ‘키파’를 쓰고 구약성경 시편의 한 구절을 읽고는 기도문 쪽지를 바위틈에 꽂았다. 기도 의식을 마친 후에는 방명록에 “이 성스러운 곳에서 기도하게 돼 매우 영광이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국가를 항상 축복하기를”이라고 썼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주요 외국 인사들은 관례적으로 통곡의 벽을 찾아와 이런 의식을 하는데,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정신적, 종교적으로 최고의 성지로 연간 전 세계에서 500만명이 찾는다.
솔로몬이 세웠던 예루살렘 성전은 B.C 586년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당한 후,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해 다시 성전을 재건하였는데 그 성전이 스룹바벨 성전이다.
스룹바벨 성전은 헤롯왕에 의해 증축이 시작되어 A.D 63년에 완공이 되었다. 남쪽 벽이 280m, 동쪽 벽이 460m, 북쪽 벽이 315m, 그리고 서쪽 벽이 485m나 되는 거대한 성전이었다. 그런데 로마의 압제 아래에 있던 유대인들이 반란을 시도하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서 A.D 70년 완전히 파괴되었다. 당시 예루살렘 멸망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하고 끔찍했다. 로마 군인들은 성전에 불을 질렀고, 수많은 유대인들의 목을 베었다. 성전 수장고에 숨어있던 여자와 어린이 6천여명이 산채로 불태워진 것을 포함해, 110만명의 유대인들이 죽고 10만명이 포로로 잡혀갔다. 티투스는 성전의 서쪽 성벽인 통곡의 벽을 제하고는 예루살렘 성을 초토화시켰는데, 그가 서쪽 벽을 조금 남겨 둔 이유는 커다란 성전을 파괴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성전이 파괴된 후, 약 250년 동안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 갈 수 없었다. 비잔틴 시대가 되어서야 일 년에 단 하루인 아브월 9일, 성전이 파괴된 날에만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그날, 무너져 조금 남아있던 서쪽 성벽에 모여 성벽을 두드리며 슬피 울곤 하였다. 그때부터 이 서쪽 성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하였지만, 1967년까지는 통곡의 벽을 포함한 동예루살렘이 요르단 영토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들어 갈 수 없었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 한 후에, 유대인들은 마음대로 들어와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통곡의 벽은 길이 50m, 높이 18m가량 되는데, 실제로는 땅속으로 훨씬 더 깊이 들어가 있다. 지하로 17단이 묻혀있다.
지금도 많은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 앞에서 무너진 성전을 바라보며, 또 재건될 성전을 기대하며 기도를 한다. 해외에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예루살렘까지 와서 소원을 적은 종이를 접어 통곡의 벽 틈 사이에 집어넣고, 기도를 한다. 한 해 기도문 쪽지만 100만건이 넘는다. 통곡의 벽을 보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여전히 보이는 성전이 신앙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성전 되신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보이는 성전만을 바라보고 있다. 보이는 성전은 예수님이 오시므로 그 기능과 역할이 끝이 났다. 그러므로 아무리 통곡의 벽 앞에서 그들이 간절히 기도를 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헛될 뿐이다.
예수 없는 기도는 죽은 기도이고 무익할 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원을 성취하심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게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