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에 발표된 어린이 동화집 <강아지똥>은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 팔렸는데,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다. 강아지똥의 작가는 시골교회 종지기였던 권정생이다. 그는 평생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다가 2007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아지똥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자전적 삶을 그린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겨울의 돌담길 한 구석에 흰 강아지 한 마리가 조그맣게 똥을 누었다. 날아가던 참새가 강아지똥을 보고는 “에구 더러워” 고개를 돌렸고, 옆에 있던 흙덩이는 “너는 똥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개똥”이라고 하였다. 그 말에 강아지똥은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다. 강아지똥은 겨울 내내 흰 눈을 맞으며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봄이 오자 강아지똥 옆에 조그맣게 민들레 싹이 텄다. 민들레는 강아지똥을 보고 자신이 꽃을 피우려면 비와 햇빛 외에 강아지똥이 필요하다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에 강아지똥은 기뻐서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았다. 사흘 동안 비가 내리면서 강아지똥은 잘게 부서져 활짝 핀 민들레꽃 고운 향기가 되었다.
강아지똥의 저자 권정생은 평생 병마와 싸우며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는 192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청소와 삯바느질을 하던 부부의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광복 후 아버지 따라 고향인 경북 안동시 일직면으로 돌아왔는데, 끼니를 잇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를 나와 행상으로 떠돌며 동냥까지 했는데, 못 먹고 거친 삶을 살다보니 폐결핵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콩팥 하나와 방광을 떼어내 간신히 생명을 건지지만 평생 소변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만 했다. 그 결과 키 170cm에 평생 37kg을 넘지 못할 정도로 허약체질이 되었다. 유랑 걸식하던 폐병 환자 권정생을 고향의 일직교회가 거두었다. 그때가 그의 나이 31살이던 1968년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교회 종지기가 되어, 교회 종이 차임벨로 바뀐 1982년까지 교회종을 쳤다. 여름에는 새벽 4시 겨울이면 새벽 5시, 15년 동안 꼬박 종을 쳤다. 한겨울에도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줄을 당겼는데, 일직교회 종탑 아래에는 그가 남긴 글이 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맹이도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강아지똥은 그가 교회로 들어온 다음 해에 발표된 작품이다. 1983년 교회를 나온 그는 20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덟 평 토담집에서 홀로 살았는데, 죽을 때까지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썼다. 한 달 생활비로 5만 원 정도 쓰며 아껴 모은 인세 12억 원을 몸과 마음이 아픈 어린이들을 위해 남겼다. 2007년 3월에 남긴 마지막 유언을 봐도 아이들에 대한 그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겉으로 볼 때, 강아지똥처럼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이었지만 그의 희생을 통해 수많은 아이들이 민들레처럼 활짝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세상에 하찮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하찮거나 보잘 것 없음의 기준은 인간의 시각이지 하나님의 시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다 귀하고 존재할 이유가 있다(창 1:31). 인간의 시각으로 만물을 재단하면 안 된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 인간의 가치는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사랑받고 존중받지 못할 생명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