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그래서 당시 17세인 말랄라는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데, ‘탈레반 피격소녀’로 잘 알려진 그녀의 삶은 드라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말랄라는 1997년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에서 태어났다. 파키스탄탈레반(TTP)은 여자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없게 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세운 학교에 몰래 다녔다. 2009년 말랄라는 여성교육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익명으로 영국 BBC의 블로그에 탈레반의 잔혹 행위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파키스탄 소녀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는데, 이 글들이 세계 각국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열두 살 소녀는 세계적인 인권운동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소녀가 전한 파키스탄의 참상은 유튜브와 SNS를 타고 지구촌에 퍼져나가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그녀는 여성 인권과 교육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말랄라에게 비극이 찾아왔다. 탈레반의 여성교육금지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친 말랄라에 대한 보복으로 2012년 10월 9일, 무장한 탈레반 대원들이 말랄라가 탄 스쿨버스를 공격했다. 그녀의 목과 머리에 총알이 관통해, 말랄라는 수도 이슬라마바드 부근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지만 의식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말랄라는 영국 버밍엄으로 긴급 이송돼 수 차례 수술을 받은 끝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전 세계가 들끓었다.
파키스탄 온건 이슬람지도자 50여명은 범인들을 규탄하는 포고를 발표했고, 여성교육권 운동에 200만 명이 서명했고, 파키스탄 정부는 교육 권리법안을 긴급 통과시켰다. 힐러리 클린턴, 안젤리나 졸리 등 전 세계 저명 인사들이 ‘말랄라를 돕자’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건강이 회복된 말랄라는 세계를 돌며 여성교육을 역설하는 운동가가 되었다. 2013년 7월 12일 자신의 생일날,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총회장에서의 연설에서 어린이 무상교육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말하고 싶다. 탈레반의 아이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유엔은 이 날을 ‘말랄라의 날’로 정했고, 반기문 사무총장은 그를 “우리의 영웅”이라 불렀다. 2014년 7월에는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극단 이슬람 단체인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학생 200명의 무사귀환을 호소하기도 했다. 말랄라는 어린 나이에 그런 끔직한 일을 당하고 공포와 고통을 겪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탈레반의 계속되는 살해 위협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지금까지 용기 있게 여성 교육권을 주장하고 있다. 말랄라는 말한다.
“테러리스트들은 제 목표와 열망을 빼앗아가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변한 게 있다. 나의 약함, 공포, 절망은 사라졌고 강함, 힘, 용기가 솟아났다.” 어린 나이임에도 용기 있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말랄라가 가상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은 말랄라처럼 용기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발전시킨다. 신앙의 세계도 그렇다고 본다. 진리에 대해 용기 있게 선포하고 어떤 핍박에 대해서도 용기 있게 맞서는 사람만이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고, 기적을 만들 수가 있다. 용기는 우리 삶과 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