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에 오비삼척(吾鼻三尺)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내 코가 석자다’라는 뜻이다.
이 말을 해석해 보면, ‘내 콧물이 석자나 나와 있는데 이렇게 쉬운 내 콧물도 닦는 일도 못하는 판에 누굴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참 이기적인 말인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 왜냐하면 혼자하기 버거워서 부탁을 했을 때 ‘내 코도 석잔데 누굴 도와주겠어?’라고 답을 할 때 매우 서운하고 섭섭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듯했다. 할머니가 손자 이마에 손을 올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네, 그럴께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것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순간, 난 할머니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의 유형을 몇 가지 예상해 보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라거나 “할머니는 다 알지” 같은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 어설픈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아파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어린 손자에게 할머니가 알려주려고 한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니었을까? 출저: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중에서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참 마음 깊이 다가오는 말이다. 더 아파봤기 때문에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도 할 수 있다.
요즘 현대인들은 참으로 많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산다. 경제적인 문제로, 자녀의 문제로, 취업과 결혼, 대인관계에서 오는 상처 등 참으로 많은 일로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마치 ‘나 좀 봐줘. 아픈 마음을 치료해줘. 나 위로받고 싶어’ 아우성치는 듯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바쁘다고 ‘내 코가 석자’라고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곤 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 다는 건 덜 아픈 사람을 보듬어 안아 주는 삶이다. 왜냐하면 더 아파봤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파하셨다. 아니 너무나 아파하셨다. 너무나 아파하셨기 때문에 아픈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눈에는 늘 고통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는 영혼들, 사회적 약자들, 소외받은 이들이 있었다. 비록 내가 아프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는 삶...이런 삶이야말로 오비삼척의 시선을 극복하는 삶이고 참 제자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