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가욘이란 말의 의미는 "슬픔의 노래"란 뜻입니다.
아마도 구시란 사람의 비난을 들은 다윗이 슬픔에 처해 부른 노래가 시편7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시'란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압살롬을 피해 달아가던 길에 만난 베냐민사람의 정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베냐민 사람들에게 다윗은 원수입니다. 다윗은 베냐민사람들의 권력을 빼앗아 자기것을 취한 인물이니깐요.
압살롬에게 쫓겨 달아날 때 베냐민 사람들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였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다윗은 시편7편에서 자신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1절) 자신의 처지가 '사자에게 찢김같은' 상황임을 직감합니다. (2절)
그런데...
1절의 상황이 17절에 대반전으로 막을 내리네요.
17절,"감사함이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 어떻게 이런 반전이 가능한 걸까요?
첫번째, 1,3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바로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신다는 확신을 고백합니다.
억울한 일, 말도 안되는 일, 고통스럽고 눈물나는 수 없는 일들을 겪을 수 있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나를 지키시는 분, 성경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내가 만난 하나님' 그래서 담대합니다.
두번째, 8절에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담대합니다.
다윗의 기도가 힘이 있고 당당해 보입니다. 3절을 보면, "내손에 죄악이 있거나...악으로 갚았거나... 까닭없이 빼앗았거든..."
-> 5절,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셔도 됩니다" 이말의 다른 번역은 이렇네요. "내 명예를 짓밟아도 나는 좋습니다"
뭐가 그리 당당할 수있을까요?
우리의 기도가 힘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과 양심이 죄로부터 자유하도록 늘 십자가를 의지하고, 회개하는 삶, 정직한 마음, 순결한 마음이 있어야 고난 중에도 담대하게 간구하고 기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윗처럼 나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떳떳한 하루 하루, 시간,분,초를 살도록 성령님을 더 의지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