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과 또 세상과의 관계를 흔히 배와 물로 비유합니다.
배가 가치가 있으려면 반드시 물 위에 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배가 강물 위에 떠 있어야지, 배가 물을 담는 그릇이 되면 침몰 하게 됩니다.
큰 파도 작은 파도를 만나다보면 또 배 안에 물이 들어옵니다.
그때 해야할 일이 뭔가요? 부지런하게 배 안에 들어온 물을 퍼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소홀히 하고 게을리 하게 되면 결국 배 안의 물이 가득 차서 배가 아니라 물을 담는 그릇이 된 줄 모른채 침몰 하게 되어 있습니다.
넘치는 교회 공동체는 물위의 방주이어야지, 물을 담아 버리는 그릇이 되면 곤란합니다.
오늘 복상 중 히스기야의 개혁이 등장합니다.
아버지 아하스의 어그러진 삶과 예배를 회복합니다. 속죄제, 번제를 회복하고 여호와의 노래와 나팔을 불고, 다윗의 악기를 울립니다.
아버지로 인해 처참히 무너진 삶과 대신관계가 회복됩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하29:25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모든 회복의 기준은 말씀이었습니다.
삶과 예배도 성전도, 관계회복도 절대기준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넘치는 성도들의 영적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복상입니다.
주일 설교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영적 기갈 속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복상하십니까?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 영혼의 몸부림을 치셔야 합니다.
게으름, 분주함, 피상적 묵상은 내 심령을 화석화 합니다.
복상을 회복합시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개혁입니다. 더욱 힘써 하나님의 음성을 붙드십시오. 그 하루 하루가 쌓여갈때 영적 거장으로 세우십니다.